2
가끔 그대로 완성하면 될 인연을
완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밀어내곤 했다.
필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라 작은 용기였는데.
LashMe
Time to be brave
With Abi
안녕, 아비.
다시 인간으로 폴리모프를 하고선 당신을 올려다보았다. 고마워요, 라는 말에 온기가 아직까지 피부에 맞닿아 있었다. 당신의 육체 위에 자신의 문양이 새겨져 있을 거란 상상을 하니 기뻤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불안했다. 비록 우연에 의해 이어진 인연이지만 필연이었다. 어쩌면 내게 얼마 남지 않을 시간 안에서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당신이 싫지 않았다. 좋았다. 좋아서 문제였다. 혹여 내가 당신의 기대에 충전하지 못할까봐. 그래서 당신의 나에 대한 애정의 수치가 조금씩 떨어질까봐. 제 볼을 감쌌던 당신의 볼에 잠깐 제 손을 포갰다가 부드럽게 떼어냈다. 아비, 할 말이 있어.
" …나는, 수장님을 제외한 다른 누구보다도 오래 살아왔지만 아직까지도 어린 아이보다 못하단다. “
저 멀리서 엿들은 지식들을 감히 아는 체 하는 데에도 선수야. 정작 써먹을 곳은 어디에도 없고, 있다 하더라도 응용도 제대로 못하지. 대화도 많이 안 해봐서 대화 주제가 금방 다른 곳으로 튀기 일쑤인데 자각도 못하고…. 다가가는 법도 모르지. 나는 항상 방관자였단다. 흐름이라는 걸 지켜보기만 하는 관객. 관객이 무대 위에 조연 배우가 되려니 그게 쉽지 않은 거야.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말 자주 까먹어. 늙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하루에도 수많은 기억들이 저 멀리 날아가거나 묻혀버린단다. 종종 이름도, 심지어 얼굴까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야. 그렇게나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하는데. 아무리 용이라도 세월은 비껴가지 못하나봐…. 자기소개를, 아니, 자신의 결점을 떠오르는 대로 줄줄 읊으며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래도, 이런 나와 친구가 되어주겠니, 아비게일? ”
친구.
근 천 년 동안 친구라 부를 만한 이가 없는 삶을 살아왔다고 하면 너는 믿어줄까. 흐름과 천성이라는 말에 스스로 가두며 살아왔다. 새장의 문은 진즉 열려있었는데도 멀뚱히 밖만 바라보며 한 걸음도 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어리석은 새가 나였다. 움직이는 생명들은 머물러 죽어가는 활기와 뒤섞이지 않는다. 수용이란 이름으로 체념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내가 너를 아비라 부른 순간 우리는 이미 친구라고, 너는 그리 말했었지. 분명 무의식적으로 한 말이었다는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럼에도 내게 있어 친구라는 두 단어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뜻 그 이상의 의미였기에 기뻤다. 그래, 순간 보이지 않는 네 색이 반짝, 잠깐이나마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허나 두려움이 기쁨을 야금야금 먹어갔다. 솔리움이 발을 들인 순간 내가 얼마나 부족한 이인지 뼈아프게 느끼고 있었다. 나는 새로 뜨는 해가 아니라 저물어가는 해다. 너는 나아가는 존재이고, 나는 머물러 움직이지 못하는 존재지. 내 모든 단점은 고칠 여유도 없이 박제된 채로 시간 속에 남아버릴 게 분명했다. 네 자그마한 회상의 잔재 속에 나는 어떻게 남게 될까. 이 세상에 미련 하나 남기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주제에 당신에게 친구에 관해 재청하는 건, 무대 뒤 그림자가 아닌 조금 더 나은 존재였다고 기억되고 싶어서 그럴지도 몰랐다.
더 이상 내가 일방적으로 도망치는 관계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이런 나라도, 끝까지 네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물어보며 있는 힘껏 활짝 웃어 보이려고 했지만 입매 끝이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